멋진 아버님과 자상하신 어머님의 사위 사랑 이주원(대한상사중재원), 이성애(송곡고등학교) - 고양필하모닉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이지아 정보 사이트

아들 같은 사위를 환영하시는 방법..

멋진 아버님

격렬한 환영에 인사 받으시는 것도 잊으시고.. 아내가 일본에 온다 온다 하면서 안 돌아 오고 저도 한국에 못 오게 하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버님이 자가 격리중이라고 둘이 어떻게 격리하냐고 저는 밖에 세워 두고 보건청에 전화하시고 경찰서에 전화하시고.. 안에 들어 갔더니 안 나가면 경찰 부르겠다는 협박과 함께 경찰차에 태워서 편하게 보내 시려는 세심한 배려까지..

연락하고 가면 공항에 마중 나오는데 왜 제가 연락도 없이 가겠습니까? 일본에 올 때 되면 시비 걸고 싸우고는 연락 끊어 버리는데 그럼 제가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일 그만 두고 갔는데도 결국 쫒겨나서 춘천에서 자가격리 마치고도 못 오게 해서 3주간 한국에 있어도 처가집 문지방도 넘지 못하고 출국.

자상한 어머님

(초반 작은 목소리) 사위가 왔는데 아버님이 경찰 부르겠다는 협박에 결국 어머님이 먼저 "경찰 불러야 될꺼 같은데요." 아내에게는 1년이나 떨어져 살았다고 당신 보고 싶어 왔다고 했더니 어머님이 뒤에서 "그말을 어떻게 믿어?" 결국 장모님이 계신데 밥 한끼도 못 얻어 먹고 쫒겨났습니다.

사랑스런 아내

친정에 가고 싶거나 가서 오기 싫을 때마다 술 먹고 시비거는 아내. 이번에도 결혼 기념일 선물로 오키나와 여행 잘 다녀와서 대화할 때는 결혼기념일까지 1주일 같이 있으면서 이사 준비하기로 하고 이사 할 때 또 온다고 해서 얼마나 고마웠던지.. 다음날 술 먹고 시비걸고 싸우면 또 그냥 돌아 갈지는 모르고..

아내가 술 마실 때마다 싸우는 건 아니지만 싸운 대부분이 아내가 술 마시고 시비 걸었을 때다. 그렇지만 이쁘고 사랑스럽고 행복한 중에는 느끼지 못하나 보다. 불행이 행복을 추월하면서 반복되는 사실을 알았으니 말이다.


결혼 기념일 선물은 여행을 준비했는데..

연말연시를 같이 지내려고 입국했는데 일본은 2주 격리가 강제가 아니라서 공항에서 바로 여행지로 GO~

【佐原】애도시대 거리 사와라. 메이지시대 건물에 프랑스요리. 맘데로 예약했다고 화 낼까봐 예약 전에 아내에게 물어 봤다. 예상대로 너무 좋아 하더라.. 요리도 분위기도..

【銚子】태평양 바닷가 마을 초시. 전에 왔다가 좋아서 꼭 아내 데리고 와야지 했는데.. 성공.

초시 등대. 맥주 한병 마셨는데 애들 기념품을 의논 없이 샀다고 화내기 시작하더니, "미안해요. 안 그럴께요.", "다음부터는 꼭 의논하고 살께요.", "돈으로 물러 올까요?", "당신이 원하는 거 또 사면되죠." 다 안 통하고.. 이얘기 저얘기에 결국 시부모 얘기까지.. 화가 나서 버리고 왔더니 "다시 주워 와!" 안 그러면 어떻게 한다는 협박까지.. 쓰레기통 뒤져서 주워 오는 수 밖에..

【九十九里】일본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촬영한 해변가. 영화가 재미있었다고 해서 꼭 데리고 오고 싶었는데 등대에서 화내고 집에 가자는 걸 데리고 왔더니 기분이 풀리더라.

【沖縄】연말연시는 언제나 동남아 따뜻한 나라였는데 코로나 때문에 오키나와. 3박4일 잘 먹고 구경 잘 하고 오키나와 술도 즐겁게 마셨는데 돌아 오는 뱅기에서 맥주 마시고 또 내리자 마자 시비. 결국 혼자 가 버려서 공항 경찰 도움 받고 처가집 부모님께 메세지 보내니까 나타나서..

여행 다녀온 다음날 일요일. 아내 좋아하는 라멘집에서 식사하고 프랑스 성 양식의 카페에서 여유롭게 커피 한잔.

"언제 돌아 갈꺼예요?" 물어 봤더니 제가 서운해 할까봐 아내가 "이사할 때 또 올께요." 온다 온다 하면서 1년간 떨어져 살아, 큰 집에서 혼자 사는 데다 기다려 줄 사람도 없는데 출퇴근도 멀어서 도쿄 원룸으로 이사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일주일 후에 있는 "결혼 기념일까지 같이 있으면 안되요?" 했더니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고마웠던지..

저녁 먹다가 아내가 술 마시면 또 시비 걸까봐 피하느라 피곤하다고 먼저 올라가서 잤는데.. 오늘은 괜찮겠지.. 여행도 잘 다녀오고 낮에 재택 근무 하면서 쇼핑하고 맛있는 거 먹고 오라고 했더니 하루가 만족스러웠던지 기분 좋게 들어와 맛있는 거 만들어 먹고 아내가 추천한 영국 드라마 보고..

"이러다 또 내일이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잘 해줄꺼지?" 술 주정 받아 주고 잊으려고 노력하는 게 비아냥 꺼리는 아닐텐데.. 이런 비아냥으로 시작해. 또 시부모 얘기로 속 뒤집어 놓고 위에 있는 동영상의 상황 "너! 그래 너!! 너는 외국에서 YOU야! 그걸 이해 못 해? 넌 조선시대 사람이냐?" 그래도 참았는데.. 고함 지르고 유리컵 깨고 음식 다 엎어 버리고 접시 깨고 쌍욕까지.. 시비 종합 선물 세트!

불행한 기록

아내하고 행복한 기록만 남겼는데.. 사진 찍고 동영상 찍고 공유하고 공개하고..

매주 금요일이면 회사 근처나 집 근처에서 꽃 사 들고 아내 불러서 데이트 했는데.. 하루는 회사 근처 바에서 맛있게 먹고 술 한잔 하고는 또 시비 걸더니 휴대폰으로 녹음을 하더라..

그때 갑자기 전남편하고 소송할 때 자기 휴대폰에서 증거자료 지웠냐고 했던 게 생각났습니다. 제가 몇번 휴대폰 고쳐 줬더니 그때 지우지 않았냐고.. 보지도 못 했다고 했더니 그거 복구 한다고 고생하는 걸 봤는데.. '나하고도 그럴려고 준비하나?'

그러다 아내의 술버릇과 시비가 점점 심해져서 영상 찍어서 술 깨면 보여 주겠다고 했더니 자기가 찍겠다고 찍은 영상이 제 휴대폰에 3개, 자기 휴대폰에도 몇개 있을겁니다. 술 깨고 봤는지는 모르지만..

이번에도 결론은 친정 그리고 이혼

싸우고 나서도 아내를 품에 안으면 다 잊고 행복했는데, 이번에도 대화와 설득이 아닌 시비와 싸움으로 몰고 가더니 아빠 뒤에 숨어서 모든 건 내 책임으로 돌리고 자꾸 멀어 지는 걸 보면서 지난 일들을 떠올려 봅니다.

그때는 별거 아니라 생각하고 지나친 일들이, 싸우고 나서도 빨리 잊고 행복해 지려고 했던 일들이, 생각해 보니 새삼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내사랑 이쁜이

이지아 (Jia Lee, Jiah Lee) 콘드라베이스 연주. 상명대 98학번. 뉴서울 오케스트라, 고양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객원

2번의 결혼, 둘 다 혼전 임신. 두번 모두 정씨. 전남편한테 아들하나, 딸하나

운명이었을까? 그렇게 믿고 싶었을까?

처음엔 카카오 스토리에서 친구 신청했었다는데 그때 내 글에 댓글이 많을 때는 백여개 달릴 때라 기억에 없었다. 나중에 자기가 댓글 달았던 것을 보여 줘서 알았지.. 이거 말고도 몇개 더 보여 줬는데..
결혼 후 카카오 스토리 글을 모두 비공개로 하고 이름 변경, 이지아→bassist jia.

이번에는 어떻게 찾았는지 페이스북에서 저를 검색해서 친구 신청. 카카오 스토리 친구 중에 페이스북 친구는 우연히 몇명 밖에 모르는데 일부러 검색해서 저를 찾은 사람은 아내가 처음.

처음 만난 날에 첫날밤

그 뒤로 대화를 하면서 친해 져서 일본에 저를 만나러 오는데 비행기만 예약하고 호텔 예약을 하지 않고 저희 집으로 오는 바람에 처음 만난 날에 첫날밤을 보냈습니다.

아내는 오랜 기간 제 카카오 스토리 글 읽으면서 저를 알아 왔다고 하지만 저는 대화 시작한 것도 얼마 되지 않은데다 처음 만나는 거라 아직 경계심을 풀지 못 해서 한국에 돌아 가는데 배웅을 공항 철도 역까지. 지아씨는 공항까지 배웅하지 않는다고 서운해 하더라..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말라카 여행 가는 버스에서 "이런 건 무릅 꿇고 줘여 하는데 장소가 이래서 미안해요. 행복하게 해 줄게요." 하면서 이쁜이가 제 손에 끼워 준 반지.

두번의 친구 신청을 받았고, 일본에 용기 내서 만나러 와 주고, 공방 예약해서 직접 둘의 이니셜 새긴 반지 만들어 끼워 줬던 이쁜이. 감사하고 감동적이고 고맙고 또 미안했는데.. 지금은 왜 그런 추억도 의심스럽지? 내가 점점 못난 사람이 되어 가는 건가?

결혼 생활

혼인신고하고 일본에 입국하기까지 1년 4개월 17일동안, 제가 이쁜이 만나러 한국에 간 게 17회 61일, 이쁜이는 11회 66일 동안 일본에 머물렀습니다. 여행은 16회 9개국 16개 도시 31박.

화려한 연애를 뒤로하고 결혼하면서 혼수는 필요 없으니까 애들하고 숟가락만 챙겨 오라고 했는데 부모님이 같이 오셔서 이케야에서 침대 사 주시고 애들 2층 침대도 사 주시고 집은 여기 저기 아내 편하게 하려고 손 보시고..

결혼 전 다녀 갈 때 데크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해서 여름 내내 주말이면 데크 작업.

월급 800만원쯤 전부 통장에 넣어 주면 세금 한번 안 내고 카드값 연체하면서, 애들하고 쇼핑하고 외식하고 슈퍼에 자주 가면서도 제가 마시는 술이 떨어져도 그거 한번 안 사오더니..

한국에 가면 신경도 안 쓰고 혼자 있는 남편 걱정해 주는 것도 없고, 저는 혼자 지내면서 일해서 아내가 남겨둔 450만원쯤 되는 카드값 갚고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제 카드 쓰고 한국에서는 엄마 카드 쓰면 되니까 저는 신경 쓸 필요도 없었나 봅니다. 오히려 언제 오냐고 물어 보면 말 돌려서 싸우고 연락을 끊어 버렸습니다.

아버님 오셨을 때 생활비 쓰는 것 때문에 싸운적이 있는데 "그럼 자네가 하면 되겠네."

그래서 제가 세금 내고 주말마다 생활용품 사다가 쌓아 두고 같이 슈퍼에 가서 식료품 사다 줬습니다. 그러면서 애들하고 쓰라고 우선 백만원 주면서 더 필요하면 얘기하라고 했더니.. 아내가 시비 걸어 싸우고 한국에 가면 장모님이 생활비 백만원 밖에 안 줬다고 화부터 내시는데.. 왜 제 얘기는 들어 보지도 않으시고..

부모님이 주는 돈만 써서 그런지 생활비가 뭔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생활비로 준 건 800만원이고 나중에 백만원은 용돈이라고 해도 꾸준히 생활비 백만원 줬다고..

시비 거는 이유

항상 이유가 있었다고 하는데 결과는 언제나 똑 같고, 그것도 반복되다 보니 패턴도 발견되더군요.

대화와 설득은 모르고 화를 내거나 시비 걸어 싸우고 나면 자기가 하고 싶은데로 하는 아내도 처음에는 대화라는 걸 시도합니다. "이번에 애들 쉬니까 한국에 다녀 올께요." 그래서 다녀 오라고 해서 비행기 예약하면 그때부터 다시 시비를 걸기 시작해서 다녀 오지 말라고 해도 갈꺼라고.. 어차피 당신 돈 안 썼다고 해서 "무슨 돈으로? 아니 그리고 니돈 내돈이 어딨어요?"

그 돈에 대한 존재가 궁금해서 "그럼 내 것도 예약해요." 했더니 아빠가 주신 돈이라고 왜 당신 비행기를 우리 부모님한테 예약해 달라고 하냐고.. 그렇게 아내의 생각에선 제가 항상 소외되어 있었습니다.

한국에 가서는 온다고 하면서도 비행기 예약하기 전에 꼭 시비 걸어 싸우고 연락 끊어 버려서 부모님한테 연락하기 시작했습니다. 매번 아내가 시비 걸어 싸우는데 언제나 제가 사과하고 달래고..

이번에 처음으로 아내가 시비 거는 동영상을 같이 찍었습니다.

아내의 반응

제 휴대폰 뒤져서 아빠하고 돈 얘기했냐고 화 내더니, 아내가 술 깨고 나서 돈 얘기라는 게 뭐냐고 내 휴대폰 아무리 뒤져도 모르겠다고 물어 보니 사과도 없고 "몰라" 이 한마디. 결혼 초기에는 아버님한테 돈 주지 말라고 부탁 드린 적이 있습니다. 일본 살림은 안중에도 없고 그냥 쓰다가 없으면 아빠 돈 쓰고 엄마 카드 쓰느라 계획도 없고 미래를 위한 저축도 없다고.. 그런데 아버님은 내 돈 주는데 네가 왜 신경쓰냐고 하셔서 포기했습니다.

한번은 아버님이 "딸이 돈을 달라고 하는데, 돈이 있는데 어떻게 안 줘." 하시는데 아내가 아버님을 째려 보면서 "내가 언제 달라고 했어요?" 하는데 아버님이 어쩔 줄 몰라 하시더라..

어머님

아내한테 "엄마가 아빠 술 때문에 평생 힘들었던 거 너도 알면서 너까지 그러면 어떻하니?"
중고등학생 때부터 아빠가 술 드시면 귀가해서 자기를 깨워서 같이 술 마셨다고 하더니 그렇게 처음에 마시는 술을 아빠한테 잘 못 배웠구나..

아버님

"왜 시비 거는지는 생각 안 해봤어?" 아.. 술 먹고 시비 거는데도 이유가 있구나..

그러고 싸우고도 매번 제가 사과한다고 말씀드리면 "어떻게 사과했는데?" 아.. 내가 사과를 잘 못해서 그렇구나..

아내의 친정 생활

아빠는 아들 데리고 주무시고, 엄마는 딸 데리고 주무시면서 다 챙기고 학교 보내고 밥 차려 주시고.. 아내는 가끔있는 연주하는 날 아니면 매일같이 밤 늦게까지 드라마 보다가 점심쯤에나 일어나서 차려 놓은 밥 먹고.. 아빠가 매달 통장에 돈 넣어 주시고 엄마 카드 쓰면서, 애들 부모님한테 맡겨 두고 친구 만나고 밤 늦게 나가서 아침에 들어 와도 부모님은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저하고 연애 할때도 밤새 같이 있다 아침에 애들 학교 가는 것만 챙겨 주고 온다고 다녀 왔습니다.

아내가 자꾸 안 온다고 부모님한테 말씀 드려도 부모님은 항상 본인 의사를 존중하신다고 아내한테는 아무 말씀 안 하셔서, 남편을 나쁜놈 만들면 자기가 하고 싶은데로 살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전 남편과 이혼 사유도 전부 남편 탓으로 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애들도 아빠 탓으로만 알고 있다고..

이렇게 까지 하는 이유가 대체 뭘까?

'DEAR MY 성주님, 언제나 당신 곁에 있을께요.' 꼬실 때는 언제나 곁에 있겠다고 하더니..

싸울 때마다 시부모 얘기, 제 자존심 긁거나 과거 얘기가 꼭 나오는 이유는, 오만가지 얘기를 다 꺼내도 참는데 그 말만 나오면 못 참으니까.. 신혼 여행 때도 방콕 시내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현지 음식하고 술 한잔하다 시비 걸더니 "다른 여자한테도 이랬지?" 그럴리가.. 술 먹고 시비 거는 여자는 당신이 처음인데..

그렇게 싸우고 나면 친정 가고, 가서 안 오고, 연락도 잘 안되고, 내가 정리하고 한국에 들어 온다고 해도 듣지 않고, 위치 공유 끊어 버리고, 예전에 사용하던 SNS에 자주 접속하고, 이혼하자고 하고..

귀국

부모님 곁에서 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일본 정리하고 들어 온다고 해도 듣지도 않고, 언제나 처럼 자기 잘못은 생각도 안 하고 나만 추궁하는 건.. 자기 잘못은 언제나 원인을 설명하면서, 내 잘못은 항상 결과에만 집착하고 계획한 데로 밀고 나가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왜 이렇게 까지 하는거지?

위치 공유

연애할 때 운전 중에 전화할까봐 시작했는데, 아내가 일본 오고 제가 퇴근할 때 역에 내릴 때 쯤 어플이 아내한테 제 위치를 알려 주니까 서로 편하게 썼는데.. 한국에 가서는 싸우고 위치 공유 끊어 버린 적이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 들어 가서 사과하고 기분 풀어 주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 왔는데 어느새 다시 공유로 되어 있더군요. 근데 이번에는 위치 들키기 싫은 일이 있는지 여전히..

생각해 보니 옛날 여친도 그런적이 있습니다. 싸우고 며칠 만나지 말자고 하더니 그동안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었더군요. 싸운 것도 계획이었습니다.

예전에 사용하던 SNS

결혼 전에 저한테 친구 신청할 때 사용하던 카카오 스토리도 페이스북도 프로필만 남겨 두고 글은 전부 비공개로 하고, 결혼해서 새로운 SNS 만들더니.. 지금 생각해 보면, 제 사생활에는 아내가 도배 됐는데 아내의 사생활에는 제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문득 그 바람났던 옛날 여자친구가 생각나더군요. 전 부모님이나 친구들이나 지인들한테 여친이라고 자연스럽게 소개했는데, 그녀는 같이 활동하던 봉사단체에서도 누구에게도 비밀로 하더니 2년쯤 사귀는 동안 4명하고 바람피고 결국 4번째 바람핀 남자하고 결혼. 첫사랑 그녀 덕분에 여자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았는데 다행이 그 뒤로는 그런 사람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번에 그 여친 생각이 나는지..

자신의 화려한 과거를 알고 있는 친구들을 소개시킬 수 없는 건 술 마시다 말이라도 잘 못 나올까봐 그렇다는군요.

새로운 SNS

아는 사람 하나 없는 SNS를 새로 만들어도 제 페이스북에 아내하고 찍은 사진 올려서 아내를 테그하면 자기 페이스북에 제 사진이 올라 가니까 그 사진은 비공개로 하고 자기 SNS에는 제 사진 하나 없게 관리하면서 남자들 희롱하는 댓글에 일일이 '좋아요' 스템프 찍어 주고..

혼자 사는 여자가 현관에 남자 신발 두고 빨래줄에 남자 속옷 너는 것처럼, 남편 사진 있으면 그런 쓸데 없는 댓글 안 달린다고 해도 결국 싸우고 나서야 가끔 제 사진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여자들은 이쁜 사진 한장 올려두면 남자들한테 연락이 많이 오니까 제가 아는 새 SNS만 프로필 메세지에 "페이스북 메신저 사양"이라고 하고, 예전 사용하던 SNS에는 여전히 '사양'이란 단어가 없는 걸 보면 아직도 연락을 받고 있었나 봅니다.

음약계 미투(?)

음악과 연주는 제가 모르는 세상입니다. 아내한테 들은 얘기로는 연주하는 사람들끼리 같이 차 타고 이동하고 호텔 숙박하는 지방 연주 때 불륜 커플이 많이 보인다가 했던가? 아내도 같이 연주하는 유부남한테 환한 달 빛을 보니 지아씨가 생각 난다고 한밤중에 메세지 받거나.. 또 한번은 나이 어린 남자한테 고백도 받은 적이 있다고 자랑해서 "결혼한 거 알았다면서? 그러면 희롱 아니예요?" 했더니 그게 무슨 희롱이냐고 화를 내더라..

예전에는 아내를 믿고 그냥 지나쳤던 일들이, 요즘에 "당신이 술 먹고 시비 걸어 시작된 일이고 내가 화내고 잘 못한 건 사과하잖아." 그래도 멈추지 않고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가 하고, 그동안 지내 오면서 의심스런 행동을 추적해 보니 숨기고 감추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에 와서..

가족에 대한 정의

장모님까지 저한테 장모님 카카오 스토리에 댓글 달지 말라고 하셔서 그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지금 생각 해 보면 저만 운명이라고 받아 들였나 봅니다. 저만 모두를 가족으로 생각했나 봅니다.

이번에 갔을 때 아버님이 자가격리 중인데 또 한사람을 어떻게 받아 들이냐고 하셨는데, 딸하고 외손주들이 왔을 때는 3명이 자가격리해도 괜찮고, 2명이라도 사위가 포함되면 안된다는 말씀인가?

제가 집에 같이 있는데 아내가 저하고는 한마디 상의도 없다가, 부모님하고 박사과정 들어 가고 싶다고 의논하더군요. 장모님은 한술 더 떠서 "그래 잘 생각했어." 그럼 이제 장모님이 나서서 보내지 않겠다는 말씀인가요?

아버님 고교시절 동창분들하고 여행가실 때 따라 가서 이것 저것 챙겨 드리니까 아버님이 친구분들한테 "내가 사위 데려 오길 잘 했지?" 하셨던 분인데..

모순

아내의 말은 처음엔 그냥 듣고 넘기는데 나중에 다른 말하고 겹쳐 보면 모순이 발견될 때가 많습니다.

이번에 처가집에 갔을 때 "3월2일부터 애들 학교에 가야 하는데 당신이 있으면 못 가요." 하길래 "아버님도 자가격리중이라 어차피 못 가는 거 아니었어요?" 하고 물어 봤더니.. "지금 그게 중요해요?" 하면서 말을 돌리더라..

아내 말이 맞다면 그날이 2월28일이니까 3월2일에 애들이 학교에 갈 수 있다면, 아버님 격리 기간은 이미 끝났거나 다음날인 3월1일에 끝난다는 말인데..

아버님 거짓말을 감추려고 말을 돌렸나 봅니다.

아내의 첫사랑

아내는 제가 첫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애는 둘이 있지만 내가 첫사랑인걸로..ㅎ" 하면서 기분 좋게 웃어 넘겼습니다. 당신 친구도 만나 보고 싶다고 몇번을 얘기해서 어렵게 아내 대학때 친구를 만났는데, 제가 장난처럼 "이 사람한테는 제가 첫사랑이래요." 했더니 그 친구가 "지아한테는 이번이 첫사랑이 맞을꺼예요." 하더군요.

근데 이런 것도 나중에는 고통으로 다가 왔습니다.

2번의 혼전 임신

결혼 전에 아내가 임신한 것 알고 화부터 냈습니다. 전남편은 사랑하지 않는데 임신해서 어쩔 수 없이 결혼했다고 했으면서 첫사랑한테는 화부터 내야 하나?

저하고 의논도 없이 낙태를 한다고 했습니다. 전남편하고 사는 내내 지옥이었다고 하면서 원하지 않았다는 둘째를 임신하고도 낳았으면서 나하고는 의논도 없이 낙태가 우선이야?

제가 아내 기분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화내고 혼자 결정하기 보다 의논하고 설득하려는 노력이라도 보였으면 이런 생각은 안 들었을텐데..

전 남편 결혼 앨범과 보험증

또 시비 걸어 싸워서 아내 달래러 한국에 갔는데 제가 처가집에서 2주 격리하는 동안 아내는 열흘간 저를 피해 집을 나가 있었습니다. 아내의 옛날 사진이나 본다고 선반에 있는 앨범 찾아 보다 발견한 전남편과의 결혼 앨범과 보험증. 전남편 결혼 앨범을 아직도 보관하고 있더군요.

자기 인생에 유일하게 사랑했다던 저하고는 세금도 안 내고 카드값도 연체하면서, 사는 내내 지옥었다던 전남편과 결혼 생활에서는 연금도 들고 미래를 계획했나 봅니다. 아직까지 내고 있는지 보험증도 그대로..

물론 그때는 "당신 학창시절 사진이나 본다고 앨범 찾아 보다 못 볼것만 봤어요." 하고 넘겼는데.. 이번 일로 다시 생각 해 보니 제가 아내의 가슴 속에 얼마나 자리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에 갔을 때는 보험증이 안 보여서 물어 보니 그런거 가입한적 없다는 거짓말까지..

가입한 적 없다던 보험증. 이걸 보면 생각이 나려나?

여자의 사랑

남자는 사랑이 없어도 가능하지만 여자는 사랑 없이는 안 된다고 하던데..

제 아내는 가능하다는 얘기가 되나요? 그래서 적극적으로 친구 신청하고 처음 만나는 사람 집에 찾아 가고.. 그래서 이렇게 무리하게 밀고 나가는 게 옛날 생활이 그리워서 였을까요? 애들 부모님한테 맡겨 두고 놀러 다니고 아침에 들어 와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생활이?

그래서 그렇게 시비 걸고 고함지르다 음식 엎어 버리고 유리 깨고 접시 깨는 걸, 그만하라고 뺨 때렸다고 경찰 부르고 구급차 불러서 병원에서 진단서 끊고, 저는 다음날 경찰서하고 대사관에서 연락 받고..

이러다 아내를 잃을 수 있겠다는 두려움에 한국에 들어 가서 무릅 꿇고 빌어도 계속 시비만 거는 거였어요?

2주격리 마치고 돌아 갈 때 쯤에야 같은 방에서 지내고 영종도 호텔 예약해서 1박2일 데이트며 행복한 시간 보냈습니다. 공항에서 아내의 아쉬운 얼굴을 확인하고 돌아 갔는데, 제가 일본 도착하자 마자 표정 바꾸더니 매일 아침 저녁으로 웃으며 얘기하고 사랑한다고 해도 무표정으로 저를 또 괴롭혔나 봅니다.

격리 기간동안 상대도 안 하더니 돌아 갈때 되니까 안 갈까봐 그랬는지 잠시나마 예전처럼 행복한 시간 보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일본 도착하자마자 표정 바꾸고 또 시비.. 둘이서는 잘 지냈는데 모든게 부모님하고 연관되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자꾸 보이네..

"그럼 왜 너는 이혼 안 하려고 하는데?"

아내를 만나고 저는 꿈이 바뀌었습니다. 아내가 제 꿈입니다.

몇년 전부터 해외 사업 접으면서 투자를 공부하고 있고, 몇년 후 한국에 영구 귀국하기 전에 영어 연수라도 다녀 오고 싶고, 한국에서도 처음엔 힘들겠지만 다시 사업을 하고 싶고, 고교시절 정치에 꿈을 두고 봉사활동을 시작했듯이 정치도 한번 해 보고 싶고, 소설을 쓰고 싶어 글쓰기를 꾸준히 했었는데..

아내를 만나고 부터는 모든 것들이 아내와 함께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매주 금요일 퇴근길에 데이트하고 주말에 같이 집 청소하고, 쇼핑하고 슈퍼 들러 식재료 사서 제가 요리해서 같이 먹고, 같이 골프 연습장 가고 집에 손님 오시면 다 같이 골프도 치고, 연말연시 해외여행 가고, 여행지에서는 아내가 연주하는 악기 콘트라베이스 연주가 포함된 재즈 클럽 예약해서 같이 듣고, 나이들어 애들 독립하면 같이 세계 여기 저기 둘러 보자고.. 그게 내 꿈이었는데..

부모님 성화에 연애보다 결혼을 먼저 했던 제가 나이 들어 지금 아내를 만나고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아내를 만나고 행복이라는 단어를 자주 떠 올렸습니다. 그래서 결혼하고 부터 제 머리 속에는 온통 아내와 함께 할 미래 뿐이었습니다.

사람은 고쳐 쓰는게 아니야!

경찰 부른다고 협박하고 방역 택시 불러서 춘천에 가라고, 친구분들하고 술 드실 때 쓰시라고 제가 아버님께 드린 신용카드를 돌려주시면서 이걸로 택시비 내라고 하시는 바람에 저희 부모님도 이번 일을 알게 되었습니다.

엄니가 "평생 부모가 챙겨 주는 밥만 먹다가 애들 데리고 일본에 가서 잘 살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이런 일이 있었구나. 지아는 부모 없이 못 살아. 이번에 다시 사이가 좋아져도 또 그럴꺼야." 하시는데..

그래서 제가 "아니예요. 처음에는 제가 먼저 화내서 싸운 적도 있어요. 싸움이라는 게 뭐예요? 서로 알아 가는 과정이잖아요. 지아씨도 한번 싸운 일은 또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조심해서 잘 해요. 이젠 한국에 가도 전화할 때 밥은 먹었냐, 영양제 잘 챙겨 먹어라, 세금 용지 어디 있으니 내라, 친정 부모님이나 애들하고 여행 가면 '다음에 오면 같이 가요.' 하는 이쁜 말도 해요. 지아씨 일본에 안 오면 제가 귀국하려고 일본 집하고 법인 정리하고 있어요."

이어서 "다만, 아내가 시비 걸어 싸우고 친정에 가는 건 인정을 안해요. 무조건 제가 잘못해서 그런거라고 몰아 가요. 그렇게 하면 친정 부모님이 받아 주고 저한테만 뭐라고 하시는 거 아니까 그러나 봐요. 그래서 저는 아내 보다 장인 장모님이 생각을 바꾸셨으면 좋겠어요."

하노이, 록본기, 시드니의 재즈 클럽. 여행지마다 아내 전공인 콘트라 베이스 연주하는 재즈 클럽 예약해서 같이 관람하고 제 프로포즈도 여기서 한쪽 무릅 꿇고 목걸이를 주면서 했습니다. 반지는 아내가 먼저 저한테 프로포즈 할 때 이미 받아서..

아내도 미안한 것 쯤은 아는 사람인데..

그렇다고 아내가 미안한 거 모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거기에 부모님이 끼면 이해 못할 행동을 한다는 것 뿐이지 아내도 미안한 것 쯤은 알고 있습니다.

아내가 도쿄에 나올 일이 있어서 회사 근처에서 만나 점심을 같이 먹었습니다. 무더위 한창일 때였는데.. 지도에 찍어 준, 제가 일하는 회사 찾는게 덥고 힘들었던지 만나고 부터 짜증을 내더군요. 그래서 제가 자주 가는 한국 식당이 바로 옆에 있어서 들어 갔습니다. 자리에 앉아서는 왜 물어 보지도 않고 들어 오냐고 짜증을 내더군요.

"아니 나는 당신 더운거 같아서 빨리 시원한데 들어 가야 할 것 같아서.. 미안해요. 그럼 나갈까요?" 했더니 그러자고 해서 사장님한테 죄송하다고 하고 나가서, 사람 없고 분위기 좋고 깔끔한 음식점에 들어 가 식사 시키고 병맥주를 시켰습니다. 시원한 실내에 맥주 맛도 좋아선지 기분 풀고 미안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괜찮다고 했는데도, 재차 미안하다고..

"내 생각 해서 그런건데 짜증내서 미안해요."
그래서 제가 "괜찮아요. 더우면 그럴 수 있어요. 덕분에 더 맛있는 집에 왔잖아요." 했더니..
"역시 우리 남편 밖에 없네.."

아내도 미안한 것도 알고 사과도 할 줄도 아는데 이상하게 자기가 시비 걸어 싸운 뒤에는 사과를 모릅니다. 저도 그정도 짜증은 얼마든지 받아 줄 수 있습니다. 시비 거는 것도 참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한번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제가 화를 낼 때까지..

싸우고 나면 모든 일은 상대 책임으로 돌려야 해서 그런가 봅니다. 이번에도 자기 잘못은 없고, 저는 사과를 해도 전부 제 잘못만 얘기하면서 자기 하고 싶은데로 상황을 만들어 가는데 이번에 확실히 느꼈습니다.

사람이 이상한 행동을 하는데도 다 이유가 있다는데.. 단순한 술버릇만은 아닙니다.

부모님과 연관되면 언제나 막무가네

"자스트 프랜드" 그냥 친구로 지내라고 처음 부모님 뵜을 때 어머님이 하신 말씀. 그 뒤로도 몇번 하셨는데 요즘 왜 이 말씀이 자꾸 마음에 걸리죠? 이럴껄 미리 경고하셨던 걸까요? 하긴 만나 보지도 못한 아내의 이혼한 전남편 마음이 이해된다는 생각이 드니까..

"이거 제출하면 무르지 못해요. 후회하지 않겠어요?" 강남구청에 혼인 신고하러 갔을 때 아내가 했던 말. 당시에는 당연히 농담이라고 생각했던 이 말도 요즘에는 자꾸 떠오릅니다.

아내가 싫어 하는데 왜 자꾸 부모님께 연락하냐고요? 툭하면 시비 걸고 제가 화 낼때까지 끝까지 괴롭히다 제가 화내면 싸우고 친정 가서 안 오는데, 아빠 뒤에 숨어서 메롱만 하는데, 저는 답답해서 미칠 것 같은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모님도 따님만 챙기시고 저한테만 화 내시고 사과는 제대로 했냐? 그런 행동을 이해 못하냐? 하시는데 제가 그럼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공개적으로 이건 아니죠? 저도 알아요. 아니 이번에 알았어요.

제가 블로그에 이런 저런 글을 쓰면서 저희 엄니에 관한 글을 쓸 때는 옛날 고생하신 걸 떠올리며 눈물 지으며 쓴 글이 대부분인데, 아내를 만나고 부터는 매번 시비 걸 때마다 엄니 얘기로 속을 뒤집어 놔서 그때부터 엄니를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엄니는 왜 쓸데 없는 얘기를 해서 내 인생을 이렇게 힘들게 하시냐고..

그렇지만 그것도 생각해 보면 저도 초혼이 아닌데 엄니가 예전에는 안 그러셨겠나 싶더군요. 그래도 엄니가 며느리한테 하신 말씀이 제 귀에는 안 들어 오고, 엄니가 저한테 며느리 흉을 보셔도 그냥 들어 드리거나, 잘 한다고만 말씀드렸지 문제가 된적은 없었습니다.

제가 애기 때 병치례가 많아서 시골에서 차도 없고 장터 병원 가느라 혼자서 밤길을 10리나 걸어 갔다고 하셔서 제가 그 발거름 한걸음마다 비행기 태워 드린다고 했습니다. 베트남 말레이시아 사업을 시작하고 부터 동남아 해외 여행을 매년 모시고 다니고 국내 여행은 두분이 다녀 오시라고 예약만 해 드렸습니다. 그렇게 10개국을 부모님 모시고 여행하고, 엄니한테 많게는 1년에 18번 비행기를 태워 드린 적도 있습니다.

저는 한 여자를 사랑한 죄 밖에 없는데 그런 부모님하고도 적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이혼 소송

아내가 예전에 이상한 얘기를 하더군요. 제가, 왜 자꾸 이러냐고 "왜 이혼 소송에 쓰려고?" 물어 봤더니 지금까지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무슨 얘긴지 이번에 좀 알 것 같았습니다.

이번에 처가집에서 쫒겨 나던 날 아내가 "당신 좋아하는 법으로 해요."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내가 무슨 법을 좋아해?" 물었더니.. "법으로 우리가 가족이니까 자꾸 이러는 거(갑자가 찾아 오고 안 나가고) 아냐?" 그러는데.. 말이 앞뒤가 안 맞으면 거기엔 항상 진실이 따로 있습니다.

합의 이혼 안 하면 소송으로 간다는 얘기죠? 그러면 돈 많고 소송 좋아 하시는(아버님이 부동산 관련해서도 소송하신 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박사 아빠가 전남편하고 소송할 때처럼 알아서 다 해 주실테고..

아들 같은 사위

저희 결혼할 때 저희 부모님 앞에서 아들 같은 사위로 생각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한국 가서 안 오는 아내 기다리다, 부모님이 안 보내 주시는 따님 기다리다 도쿄 원룸으로 이사하려고 짐도 다 버리고, 시비 걸고 행패 부리다 돌아 간 아내 잃을 까봐 따라서 한국에 들어 가느라 일도 끊기고, 이번에는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은지 대화라도 하고 싶어 갔는데 처가집에서도 쫒겨나고..

몇년 못 기다리고 그렇게까지 당장 부모님 곁에서 살고 싶으면 제가 정리해서 간다고 지금 사는 지역에서 퇴거 신청하고 건강보험도 상실했습니다.

아무리 얘기해도, 아내한테 맞춰 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 없으니, 저도 이제 아내가 제일 잘하는 방법으로 해 보려고 합니다.

저도 이렇게 시비 걸면 이제 아내 차례죠? 아버님 말씀을 빌리자면, 시비 거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제대로 사과하라고 하신 건 이제 아내 몫입니다.

내로남불

"아버님, 따님이 제가 법을 어기고 있는 거라고 얘기하면 타이르세요."

제가 나중에 정치하고 싶다고 했을 때 따님이 그랬거든요. 자기 부모님이 재산 모을 때 위장 전입은 기본이고 위법, 탈법이 많아서 정치하면 안 된다고.. 그때 어머님도 옆에서 그렇다고 하셨어요.

어머님이 샹하이에 다녀 오시면서 지갑하고 신발하고 벨트 사다 주셔서 감사하게 잘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그거 짝퉁이지만 좋은거라고 자랑할 때마다 저는 예전 생각에 괴로웠습니다.

아내하고 해외 여행 중에 손에 들고 다니는 가방이 불편해 보여서 화장실 다녀 오면서 메는 가방을 사다 줬습니다. 그랬더니 짝퉁이라고 창피해서 못 들고 다닌다고 화내더니 여행 중에 다른 사람한테 주려는 걸 서운하다고 그러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는 세계 지도가 그려있는 메이커가 있는지도 몰랐다고 그냥 이뻐서 샀다고 해도 그 뒤로 여행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예전에 사준 가방 어딨어요?" 물어 보면 "왜! 버렸을까봐?" 화냈던 사람이 어머님이 주신 짝퉁은 잘 쓰고 있냐고 매번 물어 봅니다.

아내는 뭐든 자기는 되고 저는 안 된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습니다.

잔디만 있던 정원을 아내와 애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주말마다 혼자 공사해서 탠트 치고 물놀이하고 바베큐하는 공간으로 활용. 마지막엔 원두막 쉼터까지 완성.

부끄러움을 모르면

사람이 부끄러움을 모르면 용감하다고 했던가요?

"당신이 아무리 그래도 제가 빰을 때린 건 잘못했어요.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에요. 평생 당신한테 사죄하는 마음으로 살께요." 해도 안 듣고, "당신 합리적인 사람이잖아. 당신이 먼저 시비 걸어 시작된 일이고 당신도 잘못이 있다고 생각되면 이번 한번만 용서 해 주세요." 해도 이젠 할 말이 없다고 하고..

그동안에는 제가 말이나 글로만 부모님께 보내면서 제가 일방적으로 잘못해서 이러는 거 아니라고 저한테만 화내지 마시라고 했는데 이번에 아내의 술주정 동영상을 보시고도 처가집 부모님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으시고..

대화가 너무 힘들어..

제가 어릴때 아버지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엄니가 옆에서 통역을 해 주셨습니다. 나이 들어 가면서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고 대화하고 싶어서 아버지가 공부하신 책은 저도 모두 읽어 봤습니다. 주역, 논어 맹자의 조선시대 아카데이판 명심보감, 풍수지리, 관상, 토정비결에 꿈해몽 그리고 한시(漢詩)까지 공부해서 취미로 가끔 고대 한시를 번역해서 블로그에 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바둑과 장기까지.. 그러고 나니 아버지하고 대화하고 설득하는 방법이 쉬워졌습니다. 그래서 부모님 전원주택 구입과 추모공원에 묘자리 분양에 엄니하고 의견이 갈리시는 걸 제가 두분께 설명해서 납득시키고 명당 자리도 찾아 드렸습니다.

아내하고 만나고 대화할 때 제 얘기가 어려었던지 "사기(史記)를 읽으면 당신을 이해할 수 있어요?" 하는 말에 넘어 갔는데 결국 아내는 핸드폰에 책을 다 넣어 줘도 안 읽었지만, 저는 아내를 이해하기 위해 페이스북 친구 대부분이 전세계 콘트라 베이스 연주자로 그들의 연주를 자주 듣고 생활을 지켜 보며 제가 하나 하나 알아 가면서 모르는 건 물어 보며 아내와의 대화의 폭을 넓혀 갔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시비 걸어 싸운 일은 대화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부모님도 제 얘기는 들어 보실 생각도 안 하시고.. 말씀을 드려도 언제나 태도에는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렇게 1년 이상 떨어져 살아야 했습니다.

첫번째 사위

결혼할 때 전남편과 이혼 사유만 듣고 나머지는 듣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가끔 아내가 얘기 해 준 걸 생각해 보면 아내 얘기와는 다르게 부끄럼움을 알고 책임감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주위 사람들 얘기로는 칭찬할만한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혼사유는 전남편 잘못만 기술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애들이 나중에 아빠 탓만 할까봐 걱정된다고 했다고..

저는 대학 중퇴라고 말씀 드렸는데 아버님이 귀국하기 전에 대학은 졸업하고 오라고 하시더군요. 한국에서 석사와 박사는 도와 줄 수 있다고.. 학위를 도와줘? 학위에도 비리가 있나?
여튼 저는 처음에는 편입이라도 해서 온라인 수업으로 학위 취득할까 알아 보다가 학위보다는 제가 잘 하는 투자와 사업에 같은 시간 쓰는 게 이로울꺼라 생각해 그만 뒀습니다.

결국 부모님은 따님 말만 듣고 사위 몰아 내고 나중에 소송까지 하시면서 한 남자 인생을 뒤집에 놓으시고 이번에도 변함 없으신 것 같습니다.

이제는 제가 용서하지 않으렵니다

연애 초반 데이트할 때 아내가 술 먹고 "내가 다 포기하고 일본에 가야돼?" 했을 때 저는, 몇년 후면 귀국할테고 그 몇년 일본에서 사는게 당신이 말하는 '포기'라면 우리는 그만 하는 게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소주방을 나와서 호텔 방으로 돌아 왔는데 아내가 따라 오면서 계속 미안하다고.. 제가 자고 있는데도 계속 미안한 마음을 표현 하더니 아침에도.. 그래서 용서하고 그 일은 잊었습니다. 지금도 다 잊고 다시 행복해 지고 싶은 게 잘못은 아닐텐데..

그런데 이번에는 용서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부모님까지 따님의 행동에 부끄러움을 모르시고, 부모님이 계속 받아 주신 덕분에 위와 같은 아내의 말도 안되는 행동이 가능했다는 걸 모르신다면 이혼에 명예회손까지 덧붙여서 소송을 하시겠네요. 지금도 엉망이 되어 가는 사위 인생을 따님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더 흔들어 놓으시면 지금부터는 부모님과의 싸움이 되겠군요.

그렇지만 저는 지켜만 보겠습니다. 지금까지도 엄마 아빠 뒤에 숨어서는 대화를 안 해서 부모님께 수도 없이 말씀드려도 안 보내 주셨는데.. 사위도 자식인데, 따님의 행동은 받아 주시면서 저는 경찰 불러 쫒아 낸다고 협박 하셨는데 이번에는 어디까지 하실지 보고 싶습니다.

지아씨는 이미 사이버 수사대에 신고하고 열심히 증거 모으고 있더라고요. 전남편 때는 지워진 메세지를 증거 제출한다고 복구하려고 고생했는데 이번에는 제가 이렇게 제공하니 열심히 쉐어 하고 캡쳐하고 있습니다.

감수성 예민하신 장모님 이성애 시인께서 왜 제 절규와 같은 문장에는 언제나 이해와 공감을 못 하시는지도 의문입니다.

그게 운명이라면..

한 여자를 만난 것이 운명이었다면.. 그 운명이 결국 저를 여기에 가져다 놨다면.. 그리고 앞으로도 대화와 사과보다 법이 우선이라면.. 저도 그냥 운명이겠거니 받아 들이겠습니다.

"타인의 고통을 헤아릴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과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 한나 아렌트

(첫번째)잠 든 아내 행복한 남편 (두번째) 귀가후 재회, 현관 인터폰에 찍힌 사진 (세번째) 시드니 어느 공원에서..

2편 희망 그리고 미래



지아는 입양아?

지아의 불법 낙태 수술

JiaWiki TOP



Copyright(c) 2021 JiaWiki.